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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웨덴으로 출발 본문
11월 28일, 올 것 같지 않던 스웨덴으로의 출국 날이 다가왔다.
출국 일주일 전까지 일 하느라 미친 듯이 바쁜 시간을 보냈고, 짐은 또 어찌나 많은지 나머지 일주일 동안은 짐과 씨름을 해야만 했다. 거기에 임시로 머물 숙소도 찾아봐야 했고, 렌트할 집도 찾아보기 위해 blocket과 samtrygg를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 새로고침하며 봤던 것 같다. Samtrygg는 내가 유일하게 스웨덴에서 살았을 때 써본 사이트였기에 믿음이 가서 열심히 찾아봤는데 매물이 정말 비싼 것밖에 없었다. 나는 유틸리티 다 포함해서 맥시멈 9,000kr라고 생각했는데 스튜디오인데 9,000 이하? 정말 찾기 힘든 조건이 되어버렸다. 전쟁 때문에 전기세가 미친 듯이 올라버려서 그런가 웬만한 렌트들은 다 전기세를 따로 내야 했다. 블로켓에 메시지를 보낼 때 pn도 있고 id kort도 있다고 대충 어필해서 보내니 답장이 꽤 많이 왔는데, pn이 있다고 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레지스터 안된다는 집들이 또 대부분이었다.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렇게나 집 구하기가 힘든 거였나. 나는 배부르게도 블로켓에서 집 찾을 때, 일터에서 30분 거리로만 찾았다가 하도 메시지 거절당하거나 레지스터 안된다고 하는 집들만 메시지가 오길래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한 시간 걸리는 거리도 막 메시지 보내보자 해서 오기 직전에는 내가 원하는 조건의 가격에 사진으로 집 상태가 일단 괜찮아 보이면 거리가 어떻든 간에 다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다 한 집주인과 연락이 닿았고 뷰잉까지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스톡홀름 도착하는 날 저녁에 말이다. 가야만 했다. 너무 바빠서 내가 정신줄을 놓았던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패기 돋게도 임시숙소를 이틀밖에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이틀 안에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출국 날 아침부터 정신없이 짐싸기를 빙자한 방 청소를 했고, 캐리어 세 개에도 다 짐이 안 들어가 ems 박스 두 개에 짐을 또 쌌고, 그 두 개도 꽉 채웠다. 물론 더 싸지 못한 짐들(책.... 옷....)이 잔뜩 있었지만 모른척했다. 가족들과 점심으로 초밥을 시켜먹고 5시에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은 헤어짐도 쿨하다 못해 찬바람이 분다. 사실 한국 돌아가서 가족들과 지내면서 하도 싸워가지고 빨리 나가 살아야지 했는데 결국엔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가게 되어 나는 그저 좋았다. 가족들의 마음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난 불효녀네 불효녀.
핀에어는 8시에 카운터가 오픈을 해서 한시간 쯤 기다렸다가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헬싱키에서 7시간 레이오버여서 밖에 나갔다 오려고 했는데,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면세점에서 액체류를 몇 개 사서 헬싱키에서 짐을 다시 부쳐야 했다. 그래서 짐을 부치면서 면세 액체류 때문에 짐을 헬싱키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하나는 스톡홀름으로 보내고 하나만 헬싱키에서 찾을 수 있게 해 준다고 해서 그렇게도 되나? 싶었는데 되니까 말하는 것 같아서 알겠다고 하고 체크인을 마쳤다.
저녁시간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출국장 들어가는 곳이 두군데밖에 오픈을 안 해서 줄이 상당히 길었다. 게다가 공항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따뜻해서 이미 비행기 타기도 전에 땀범벅이 되어서 너무 찝찝했다. 간신히 면세구역으로 들어와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면세품을 찾았다. 아직 비행기 타기까지 한 시간 조금 넘게 시간이 남아서 라운지를 갔다. 핀에어 비즈니스는 아시아나 라운지를 이용한다.
라운지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음식은 그냥 저냥 나쁘지 않았는데 투움바 파스타 조금 퍼서 먹고 컵라면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면세 물품 중 액체류 아닌 것 포장을 까서 가방에 주섬주섬 챙겼다. 필름 찾느라 개고생 하러 돌아다녔는데 면세에 필름을 팔아서 몇 개 샀고요?
이 날이 가나랑 축구하는 날이었는데 제대로 못 보고 비행기를 타야 해서 어찌나 아쉽던지. 라운지에서 축구 조금 보다가 비행기를 타러 갔다. 마침 딱 탑승 시작을 하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려서 가보니 아까 체크인 수속을 도와줬던 직원이 죄송하다며 자기는 그렇게 짐 따로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된다고 했다고... 해서 짐 두 개를 다 스톡홀름으로 보내버렸다는 거였다. 그래서 순간 짜증이 나서, 아니 제가 헬싱키 시내 나갔다 올거라 액체류 때문에 짐 찾아야해서 중간에 짐 찾는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냐.. 짐을 그냥 스톡홀름으로 다 보내버리시면 저는 이거 어쩌라는거냐고 했더니 뭐 면세 웨이버 어쩌구 하면서 거기 공항 직원한테 얘기하면 무슨 플라스틱 백을 줄건데 거기에 액체류 담으면 다시 가지고 들어올 수 있다고 했는데 솔직히 잘 기억 안나고... 아니면 내려서 항공사 직원한테 짐 헬싱키에서 꺼내달라고 요청을 하면 경유시간 길어서 가능할 거라고 했다. 어쨌든 그냥 애초에 짐 두개 다 헬싱키에서 찾았으면 이렇게 개고생 마음고생할 일도 없었는데 나만 비행 내내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았지만 알겠다고 하고 비행기 탑승을 했다.
마음이 심란한 상태로 비행기를 탔는데 오랜만에 타는 비즈니스라서 급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던 찰나 어떤 외국인이 탑승을 했는데 세상에, 크리스토퍼였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보게 됐는데 (특히 백인들은 얼굴 구분이 힘들...) 크리스토퍼는 정말 한눈에!! 알아봤다. 잘생긴 것도 잘생긴 건데 한국에 올 때 덴마크 공항에서 찍었던 사진을 인 스스에 올렸었는데 그때 입었던 착장이랑 똑같았었기 때문이지. 너무 놀라서 심장 멎는 줄 알았다. 그래도 혹시나 내가 잘못 알아본 거 일수도 있으니까 가만히 닥치고 있었는데 승무원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말 거는 거 보고 아, 맞는구나 싶었다.
크리스토퍼는 크리스토퍼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였다.(뭐래).. 전쟁 때문에 러시아 상공으로 지나갈 수 없어서 인천-헬싱키 8시간 걸리던 거리가 북극항로로 돌아서 가서 무려 14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오브 장거리 비행이었다. 이거슨 마치 미국 가는 기분이었다. 소소하게 탑친자였던 나는 기내 영화에 탑건이 있길래 또 탑건을 틀어놓고... 기내식을 먹었다. 그래도 비즈니스라고 기내식 메뉴도 3가지 중에 선택이 가능했는데 나는 가볍게(?) 먹으려고 연어를 선택. 다행히 맛도 있어서 싹싹 비웠다. 후식은 블루베리 무스랑 초콜릿 케이크가 있었는데 나는 블루베리 무스 선택.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예전에 방콕에서 헬싱키 갈 때 탔던 비즈니스는 아뮤즈부쉬-스타터-메인-후식...으로 치즈 플레이트도 주고... 아이스크림도 주고 그랬는데 많이 간소화가 됐넴. 기내식 먹고 탑건 나머지 보면서 소화를 조금 시키고 양치를 하고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눈이라도 감고 있어야지 하면서 누웠다. 누운 건 좋았는데 앞 뒤 옆에서 서라운드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서 쉽게 잠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다 잠이 들긴 했는데 나도 골았을지도...?! 그래도 이코노미 장거리 탔을 때보다는 푹- 잔 편이었다. 중간에 한 세네 번쯤 깨서 화장실 왔다 갔다 했지만.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가려고 깼는데 그때가 마침 딱 북극 쪽을 지나고 있을 때였나 보다. 사진첩 정리하려고 폰 보고 있었는데 한국인 승무원분이 내가 깨있으니까 밖에 오로라 보는데 보시겠어요? 하면서 알려주셔서 창문을 열고 밖을 봤다. 쌩눈으로 보니 사실 푸른빛을 띤 안개 혹은 구름 같았는데 오로라라고 하니까 오로라같이 보이긴 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켜서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알던 오로라의 모습이 보여서 너무 신기했다.
한창 신나게 오로라 구경을 하고 다시 창문을 닫고 다시 누웠다. 와이파이 1시간 무료라고 해서 이제 좀 써볼까 싶었는데 북극 지날 때는 와이파이가 안 되는지 연결이 안 되길래 그냥 다른 사진첩이나 정리를 했다. 14시간은 참 길었다. 분명 많이 잤는데 아직도 몇 시간이나 더 남았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빈둥빈둥 뜬눈으로 시간을 때우다 와이파이 연결이 돼서 인스타를 하다 보니 아침식사가 나왔다. 키쉬도 맛있었고 치즈랑 프로슈토도 맛있었고 따끈따끈하게 준 크로와상이 너무 맛있어서 나중에 승무원분이 빵 더 먹을 거냐고 물어봐서 크로와상 하나 더 먹었다. 밥 먹고 또 양치하고 나왔더니 뭘 나눠주길래 봤더니 북극 지나온 디플로마 ㅋㅋㅋ 별걸 다 주네.
밥 다 먹고 드디어 착륙의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내려서 짐 어떡하지, 그라운드 스태프 어떻게 찾지 오만 걱정에 다시 휩싸였다. 크리스토퍼한테 사인도 받고 싶고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결국 말은 못 걸었다. 아침식사 후에 계속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일행이랑 얘기 중인데 진짜 도저히 껴들 수가 없었기 때문.. 흑흑. 너무 아쉬웠지만 얼굴이라도 실컷 본 게 어디냐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도착 후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비행기 밖을 나섰다. 일단 그라운드 스태프를 찾아서 짐 얘기를 해야 해서 두리번거렸는데 왜 이렇게 직원이 안 보이는 건지.. 어쩔 수 없이 그냥 하염없이 환승 구역으로 인파에 휩싸여 걸어갔다. 그런데 내 옆을 크리스토퍼가 그 일행분과 지나가면서 얘기 중이었는데 잠깐 얘기가 끊기고 걷기만 하길래 내가 혹시... 너 크리스토퍼 맞니? 했더니 겁나 스윗하게 웃으면서 맞다고 해서 진짜 입틀막 하면서 오 마이 갓 나 너 진짜 팬이야 반가워했더니 웃으면서 내 팔을 살짝 툭툭 치며 고맙다고 하는데 기절할뻔했다. 그래서 여기서 봐서 너무 반가웠어 빠이! 하고 질척대지 않으려 노력을 했다 ㅋㅋㅋㅋㅋㅋ.. 차마 걸으면서 사진 찍어달라고 할 수는 없었어... 여차저차 짐 검사를 다시 하고 입국심사를 헬싱키에서 받았는데 다행히 나는 레지던스 퍼밋이 있어서 그거 보여주고 별로 물어보는 것 없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빡센 짐 검사에 진이 빠져서 그냥 밖에 나가기를 포기하고 라운지로 향했다.
새벽 여섯 시의 공항은 피크타임이라 그런지 라운지에도 사람이 정말 바글바글했다. 입구 쪽에 자리가 꽉 차 있어서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서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주 약간 허기가져서 뭣좀 먹을까 하고 음식을 가지러 갔는데 딱히 먹을 게 없었다. 핫푸드는 스크램블 에그? 아니 약간 계란찜 st의 계란 요리 밖에 없었고 과일과 샐러드가 있었는데 그냥 저 계란과 과일, 그리고 라테 한잔 가지고 와서 대충 욱여넣었다. 다행히 내가 앉은 옆자리에 콘센트 꽂을 데가 있어서 랩탑, 워치, 폰 충전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바글바글 하더니 8시쯤 되어가니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서 한산해졌다. 8시에도 아직 어둑어둑했던 헬싱키. 계속 실내에 앉아있었더니 밖에 안 나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눈도 안 녹은 것 같고... 너무 추워 보였어. 과연 내 짐은 스톡홀름까지 잘 갈까 걱정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그렇게 긴긴 7시간의 대기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스톡홀름행 비행기에 탔다. 좌석 배열은 2-2였고 3열까지가 비즈니스였다. 내 옆자리는 비어있어서 나름 편하게 갔다. 한 45분 정도 걸리는 비행인데도 간단하게 베이글 샌드위치도 주고, 무려 이딸라 컵에 음료도 따라줬다. 베이글 되게 맛없게 생겼는데 의외로 맛있어서 오, 했음. 대충 먹고 책도 좀 읽고 하다 보니 금세 도착. 드디어 스톡홀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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